천천히 걸어 들어가라, 대나무 숲에 난입한 달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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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data

Highlights

  • 자칫하면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자기는 입체적이고 남은 평면적이라고. 자기는 심층적이고 남은 피상적이라고. 나는 고뇌하는데 남은 노닌다고. 내 고통은 우물처럼 깊지만, 남의 고통은 습자지처럼 얇다고. 이렇게 상대를 자기 기분 데워 줄 땔감 취급을 하고 나면, 상대를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읽어버리고 나면, 당장의 기분이야 흡족할 것이다. 나는 이해했고, 상대는 이해당했으니까. 이해한 당신은 이해당한 타인보다 인지적 우위에 섰으니까. (View Highlight)
    • Note: 뼈아픈 말이다. 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이런면을 드러내는 것 같다.
  • 타인은 내 마음을 데워 줄 땔감이기 이전에 하나의 입체적인 인격이다. 텍스트도 마찬가지다. 내 마음을 자극해 줄 땔감이기 이전에 하나의 입체적인 작품이다. 물론 눈만 뜨면 오감을 공략하는 콘텐트들이 난무한다. 그 콘텐트들 속을 유영하다 보면 세상만사가 다 자극의 원천으로 보인다. 자극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그러나 텍스트는 내 기분을 맞춰줄 피상적인 자극체이기 이전에 해석을 기다리는 입체적인 세계다. 그 세계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호오의 감정을 잠시 거두고 그 세계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야 한다. (View Highlight)
    • Note: 텍스트는 읽히는 대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 글은 언제 입체적으로 보이는가? 대구와 리듬이 살 때 입체적으로 보인다. 사람도 그렇지 않던가. 말과 행동이 대구를 이루고, 일상에 리듬이 있는 사람은 입체적으로 보인다. ‘죽리관’에서도 대숲의 어두움과 달의 밝음이 대조를 이루고, 알아주지 않는 남과 알아주길 기다리는 내가 대조를 이룬다. 그리고 그 대조들이 모여 리듬을 만든다. (View Highlight)
  • 글은 언제 입체적인 깊이를 얻는가? 각 부분 사이에 (예상치 못한) 관계가 맺어질 때 입체적이 된다. 사람도 그렇지 않던가. 노숙한 지혜와 천진한 심성이 호응할 때, 그는 그냥 노숙한 사람이나 천진한 사람보다 더 입체적으로 보인다. (View Highlight)
  • 글은 언제 입체적으로 느껴지는가? 어떤 대상이 정지해 있지 않고 궤적을 그릴 때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사람도 그렇지 않던가. 그저 배경처럼 가만히 있는 사람은 벽지와도 같다. 감응하고 움직일 때 비로소 그는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View Highlight)
  • 글에는 언제 입체적인 맥락이 생기는가? 한마디 말에 하나 이상의 의미가 담길 때 그렇다. 사람도 그렇지 않던가. 농담에 뼈를 심을 때 그의 말은 입체적이다. (View Highlight)
  • 글은 언제 입체적이 되는가? 글의 주제가 특수한 동시에 보편적일 때 입체적이 된다. 사람도 그렇지 않던가. 구체적이고 특수한 인물이 보편적인 인간성을 구현하고 있을 때, 그는 입체적으로 보인다. (View High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