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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irector: 프랭크 다라본트
  • WatchingDate: 2023-10-10

‘쇼생크에서의 구원’이라는 원제도 마음에 든다.
redemption은 보상이나 해방을 의미하는 표현이라 여러가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한다.
대놓고 탈출이라고 하는 편보다 이게 나았을수도 있다, 또는 직관적이라 좋다라는 의견으로 나뉜다는 후문.

난 구원이라는 쪽이 더 마음에 든다. 앤디가 이루어낸 구원들. 자기 자신을 구원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구원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라는 생각에서다.
피가로의 결혼으로 잠시나마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사 했던것.
옥상에서의 맥주로 해방감을 느끼게 했던 것.
검정고시를 도와 현재 상황에서의 해방의 발판을 마련해주었던 것.
영화에 탈출보다 중요한 해방의 내용들이 많다.

인간으로서 필요한 수많은 요건들이 제한된 상황에서야, 곁에 당연하게 존재하는 필요조건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위해선 어떤 것들이 필요한가? 어떤 부분에서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가? 애초에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구속된 환경에서도 구속당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이 있다.
중요한 것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누구도 내 마음까지 구속할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해방될 수 있다.
반대로 몸은 자유로워져도 마음은 해방되지 않을 수 있다.
브룩스와 레드를 보면 알 수 있다. 몸의 자유는 마음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
몸의 구속은 마음의 구속을 의미하지 않는다.

희망을 부정하던 사람이 희망을 통해 구원받았다. 죽지 않았다. 살았다.
브룩스와 레드의 차이는 오로지 희망의 유무 뿐이었다.

창살이 없음에도 불안과 두려움속에서 사는 삶이란..
사람이 얼마나 환경에 종속되는 존재인지 알수있다.
그리고 사회적 역할이란 것은 그저 존재함으로써,
기능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를 위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 것이란 점을 다시금 되새긴다.

‘40년을 허락받고 오줌을 누러갔다. 허락받지 않으면 한방울도 나오지 않는다.’

아득한 시간이다. 아득한 시간동안 통제받은 인간은 병속의 벼룩이 되는가.
앤디는 어떻게 버틸수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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