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주 전에 눈이 펑펑 내린 날,
노가다 하고 와서 온 몸이 쑤신다는 중년의 남자친구 등을 밟아주며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를 읽어줬어요.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눈이 나린다…’
남자친구는 끙끙앓는 소리를 내고
눈은 푹푹 내리고
저는 조근조근 밟고…
제가 예전에 결혼생활을 했을 때,
신혼을 낡은 아파트에서 시작했었죠.
겨울이면 추워서 창문에 비닐을 둘렀는데
창틀이 워낙 낡아서 바람이 불면 비닐이 붕붕 부풀어 올랐어요.
둘이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 그걸 보고 있음 한숨이 나왔죠.
전남편은 평생 이런 집에서 살면 어쩌냐고 우울해 했지만
제가 그랬어요.
‘걱정마, 우린 아주 좋은 집에 살게 될거야. 그때가 되면 지 금이 그리울지 몰라.’
훗날 우린 정말 좋은 집에서 살게 됐지만
제일 좋은 집에 살 때 우리 결혼은 끝이 났어요.
이혼을 하고 만난 남자친구는 사업이 안 풀려 요즘 형편이 어려운데
그냥 있는 그대로의 이 사람과 이 상황이 그리 싫지 않습 니다.
일이 잘되서 돈이 많아지면 또 변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럴듯하게 좋아 보이는것들이 그리 간절하지도 않고요.
그냥 나이 들면 둘이 어디 한적한 곳에 가서 작은 집을 사서 고쳐 살면 어떨까 싶어요.
백석의 시처럼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서…
그런데 남친은 도시가 좋다네요.
그 나이에 해도 잘 안 들어오는 집으로 이사를 가 놓고는
그래도 도시가 좋다네요. 흠냐.
어쨌든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나이 들면 나이든대로,
어떤 삶이든 다 저대로의 즐거움이 있고 낭만도 있더라고요.
그냥 다 살아지는거 아닌가 싶어요.
눈이 푹푹내리는 날 백석의 시를 읽는 정도의 마음이 있으면요.
산골엔들 왜 못 살겠어요.
삽시간에 이만큼 댓글이 달려 깜짝 놀랐어요.
자녀는 없고 동거 아니고 저는 제집이 있어요.
남친 집에 갔다가 좀 밟아달라길래 밟아줬어요
남친은 백석을 모르고 지극히 현실주의잡니다.
어떻게든 삼황을 개선하려고 애쓰고있고요.
남친을 생각할때 한숨이 나올때도 있지만
우린 결국 찰나를 사는 존재라 생각하기에 오늘 좋으면 됐다 생각하고 넘어갑니다.
달관한건 아니고 달관했다한들
그것조차 삶의 수많은 지점중 한지점일 뿐이겠죠.
이게 또 깨달음의 끝도 아니고요.
저도 백석평전 읽어서 그의 현실이 어땠는지 알아요.
근데 제가 지금 북에서 재산몰수당하고
강제노역중인건 아니니까요 흥
사실 게시판 글을 읽다가 저 아래 60대 들어선 분이
오십 괜찮은 나이니 너무 절망하지말란 글을 읽고 나이들어가는데 가진것없는 삶이 그냥 추레하기만한가 그런 생각하다가
눈오던밤에 제가 느꼈던 행복을 공유하고파서 써봤어요.
제가 82에 글을 종종썼는데 돌아보니 주제가 한결같아요.
이혼해도 괜찮더라. 망해봐도 괜찮더라 다 저마다 괜찮아요.
우리가 가난에대해 늙음에 대해 실패에 대해
조금만 더 예의를 가졌음 좋겠어요.
어쨌든 저는 지금 괜찮습니다. 모두 그러시길.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Reference
- 더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