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철 : 좋은 평론은 정확하게 칭찬하는 것, 쓰는 마음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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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s

  • 앞으로 그와 나에게 오래 슬퍼할 만한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 그곳에 우리가 꼭 함께 있었으면 한다. 그 일이 다른 한 사람을 피해 가는 행운을 전혀 바라지 않는다. 같이 겪지 않은 일에 같은 슬픔을 느낄 수는 없기 때문이고, 서로의 슬픔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우리는 견딜 수 없을 것이므로. (View Highlight)
  • “사람과 사람이 만나 받침의 모서리가 닳으면 그것이 사랑일 것이다. 사각이 원이 되는 기적이다.” (View Highlight)
  • 나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
    _『인생의 역사』 중에서 (View Highlight)
  • 과거로 돌아가서 저의 시행착오나 실수를 막는다? 그러면 그 일을 겪었기 때문에 얻은 지혜나 통찰도 없어질 테고, 그게 없어짐으로써 이후 생기지 않았을 일이 생길 수도 있을 테니까요.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결정적으로 배우고, 자신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로부터 가장 처절하게 배웁니다. 과거의 상처가 지금 나의 좋은 부분을 하나라도 만든 게 있다면, 그걸 없애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View Highlight)
  • 저는 옛날부터 감성적이다 못해 감상적인 게 있었어요. 그것이 눈살 찌푸려지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절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그랬을 때, 논리의 세계로 갈 수 있게 해주는 ‘이론과 개념’들이 그 역할을 해 줬던 것 같아요. 이 두 가지가 제 안에 같이 있어서 감성적으로 와닿은 것들은 이론적으로 변환해 보고, 이론적으로는 알겠는데 확 와닿지 않을 때는 감정적인 것으로 변환해 보곤 했죠. 그게 잘 됐을 때, 감정을 건드리는데 개념은 갖춰진 균형 잡힌 글이 간혹 나왔고요. (View Highlight)
  •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중단하는 순간 세상은 정글이 돼버릴 겁니다. 사회적 참사가 일어날 때 보면 알잖아요? 저 사람이 얼마나 힘든지 의식적으로 알려고 노력하지 않으니까 튀어나오는 모진 말들.
    이태원 참사를 두고도 ‘놀러 가서 죽은 건데’라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사건이 왜 그렇게까지 됐는지 조금이라도 들여다보면 그런 말은 안 나오거든요. 공감 능력이라는 게 대단한 사람에게 있는 게 아니에요. 저는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모르는 사람’과 ‘아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요. (View Highlight)
  • 한나 아렌트가 쓴 『전체주의의 기원』 끄트머리에 가면 뜻밖에도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체주의라는 거대한 집단 현상을 설명하면서, 사실은 다 외로워서 그런 거라고 하죠.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하고 고립감에 빠진 사람들이 집단행동을 통해 소속감을 느끼고 존재의 이유를 찾는다고요. (View Highlight)
  • 외로운 이들에게 ‘진실이 무엇이냐’보다 중요한 건 ‘친구가 생기느냐 안 생기느냐’이기 때문에, 친구와 거짓을 믿으면서 외로움을 해결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지, 진실을 말하면서 친구와 멀어지려는 경우는 거의 없겠죠. (View Highlight)
  • “요즘 문화 전반에서 도덕적인 것에 대한 기준이 뭐랄까… 협소해졌어요. 가령 불륜을 다루는 소설이나 영화를 예전에는 하나의 소재로 받아들였다면, 지금은 그 자체가 나쁘다며 걸러 버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한 인간의 삶을 온전히 알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 내면에 어떤 결함이 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얻게 되는 진실이 있고, 그것을 돕는 게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부도덕한 소재의 작품이니까 안 읽을래’ 하는 건 인식에 대한 노력 자체를 포기하는 거죠.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 대해 ‘이건 불륜 소재라서 안 좋은 영화’라고 쓴 평이 화제가 되기도 했더군요. 그런데 『안나 카레니나』, 불륜 얘기에요. 『마담 보바리』도 불륜 얘기고요. 왜 이런 경향이 강해졌을까 생각해 보면, 타인의 실수를 통해 뭘 배우겠다는 여유가 없어서가 아닐까 싶어요.” (View Highlight)
  • “우리는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View Highlight)
  • 아까 언급한 한나 아렌트가 비슷한 얘길 한 적이 있어요. 2차 대전 후 독일에서 ‘독일 국민은 모두 반성해야 한다. 우리 중 누가 떳떳하냐’라는 분위기가 있었대요. 그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집단적 죄책감은 허구다. 그건 정말 책임져야 할 사람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죠. 모두의 잘못이라고 얘기함으로써 아무의 잘못도 아닌 게 돼 버리는. 우린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늘 경계해야 합니다. (View High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