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병근 “책 읽는 인류, 희귀종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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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월간 채널예스
- Full Title: 전병근 “책 읽는 인류, 희귀종 될까”
- Category:#articles
- URL: https://ch.yes24.com/Article/View/32328
Highlights
- 인지과학자들은 인간의 치명적인 인지적 오류의 경향성을 이야기합니다. 대니얼 카너먼이 쓴 『생각에 관한 생각』에 그런 이야기들이 잘 나옵니다. 우리는 현상적인 것을 곧바로 포착하고 그것에 근거해서 곧바로 반응하는 단기적 사고의 경향이 아주 강해요. 생존을 위해서는 그렇게 진화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부정적인 것, 성가시거나 불편하거나 불안한 요소들을 먼저 감지하고 반응하게 돼 있어요. 그런 점에서는 인류는 본성적으로 투덜이입니다. 임박한 위험이 사라지고 나면 사고에 여유가 생깁니다. 거리를 확보하고 나면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이지는 않죠. 흔히 눈앞의 현실은 고달프고 과거의 추억이나 향수는 아름답게 떠오르는 것도 그런 인지 성향과 관련이 있습니다. (View Highlight)
- 책의 미래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더 진전시키면, 제가 얼마 전에 인상 깊게 읽은 글이 있어요. 영국의 작가가 쓴 글인데요. 따지고 보면 문장이나 텍스트도 새로운 정보를 얻고 저장하고 전파하는 과정에서 생겼다는 거예요. 그 뒤로 미학적인 완성도가 높아지면서 문학도 출현했고요. 하지만 오늘날의 문명은 서사 형태의 매개 없이도 소통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거죠.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세대가 이모티콘이나 단문에 익숙한 걸 보면 알 수 있잖아요. 더구나 상시 연결사회가 되면서 점점 긴 서사가 불필요해지는 거예요. 앞으로는 연결된 뇌파로 교신이 될 거라고 할 판이잖아요. 소통 수단이라는 본래 목적이 사라지고 나면 서사에 기대할 것은 오락적 미학적 만족감인데, 그게 익숙한 세대는 계속 이어갈 거예요. 문제는 그 다음 세대도 그럴 거냐는 거죠. 기존의 문학이라는 것도 특정 세대에 한시적인 형식의 예술이나 오락거리가 아닐까, 묻는 거죠. (View Highlight)
- 문학이 소외 당하고 소멸한다면 어떤 문제가 나타날까요?
문학과 같은 서사 형태의 산문의 쓰기와 읽기와 멀어지면 인간이 갖고 있는 독자성이나 중요한 능력들도 같이 잃어버리거나 약해질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해요. (View Highlight) - 본래 독서가는 어느 사회에서나 소수임을 감안하더라도, 앞으로 더더욱 인류 중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희한한 소수이거나 희귀한 종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View Highlight)
- 최근에 독자들은 어떤 책을 찾고, 어떤 책을 찾지 않는 것 같으세요?
불안 요인들이 많아서인지 자기 방어적인 게 많아 보여요.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후로 그런 경향의 책들이 흐름을 이루는 것 같은데요. 『미움받을 용기』도 그렇고요.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정서를 알 수 있어요. 적어도 베스트셀러에 관한 한, 지식 차원의 독서보다는 정서적인 위무나 보상을 책에서 구하는 것 같아요. 상처를 많이 입었고, 그 상처를 다른 데에서 치유할 수 없어서 힘들어 하는 걸 알 수 있어요. 책이 도피처 비슷하게 된 거죠. 책의 제목이나 책 속의 한 문장, 저자가 건네는 말 한마디에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살아가는 건데, 그런 점에서 굉장히 안타까워요.(View Highlight) - 책에서 위로를 찾는 것이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책을 위로의 도구로만 여기는 데에는 문제가 있겠죠.
위로도 책의 엄연한 역할이기는 하지만, 지식문화 차원에서 책의 본령은 그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굉장히 단단한 여러 가지 것들을 갖고 있어요. 무엇보다 몰랐던 사실과 이야기, 통찰, 감동이 있고 논쟁거리도 있고, 독자에게 도전적인 생각거리도 있고, 정신과 문화를 주도하는 힘이 있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독서라는 건, 독자들에게는 불쾌감을 무릅쓰고라도 좀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일회용 밴드 같은 걸로 자리 잡은 것 아닌가 싶은 거예요. 일회용 밴드라는 건 병의 뿌리나 근원적인 부위에 닿고 치료하는 게 아니라 그냥 겉의 상처를 더 안 쓸리고 덧나지 않게 임시방편으로 막아주는 거잖아요. 그리고 ‘일회용’이니까 오래 가지 않죠. 그래서 수시로 바꿔 붙이는 거죠. (View Highlight) - 최근 들어 독자들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일회용 밴드는 굉장히 효율적이고 편리해요. 나름의 엄청난 장점이 있지요.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성비’라는 말이 유행하는데, 책에서도 가성비를 찾습니다. 뭔가 심란하거나 불안하거나 허전한데, 책을 오래 붙들고 읽을 시간이나 참을성은 할애할 생각은 없고, 그러니까 ‘지금 당장 이런 나의 심사를 조금이나마 달래주기면 하면 되는’ 손쉬운 책을 찾는 거죠. 깊이 들어가려면 그만큼 노력을 해야 하거든요. 독서가 사실 그리 호락호락한 게 아니에요.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누적이 돼야 해요. 불편한 자세며 고독부터 감수해야 돼요. 그 문턱을 넘어서면 굉장히 매혹적인 세계가 기다리고 있지만, 궤도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무척 힘든 게 사실이에요. 투자가 필요해요. 시간과 돈, 에너지,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고급한 활동이라는 점을 알았으면 합니다. 하지만 누릴 수 있는 반대 급부는 책값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합니다. 뛰어난 사람들이 책을 찾아 읽는 이유입니다. (View Highlight)